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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39장 번역과 해설-돌멩이

by 도반스키 2025. 11. 28.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만 보며
높은 자리와 화려한 결과를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도덕경은, 보이는 유(有)의 세계 뒤에
보이지 않는 무(無)의 세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도덕경 39장은 유와 무, 음과 양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하나(一)’의 비밀과 겸손한 삶을 비춥니다.


도덕경 39장

-돌멩이

[원문]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一也. 天無以淸, 將恐裂.
기치지일야. 천무이청, 장공렬.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곡무이영, 장공갈, 만물무이생, 장공멸.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是以後王, 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시이후왕, 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故致數譽無譽.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예무예. 불욕록록여옥, 낙락여석.


[번역]

옛날부터 하나(一)임을 깨달은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임을 깨달아서 푸르고,

땅은 하나임을 깨달아서 편안하고,

신선은 하나임을 깨달아서 신령하고,

계곡은 하나임을 깨달아서 채워지고,

만물은 하나임을 깨달아서 태어나고,

하나임을 깨달아서 왕이 된 자는
천하를 바로 잡는다.

 

이것을 찬찬히 살펴보면

하늘은 무에 의해서 푸르기 때문에 무너질까 조심하고,

땅은 무에 의해서 편안하기 때문에 망가질까 조심하고,

신선은 무에 의해서 신령하기 때문에 그치게 될까 조심하고,

계곡은 무에 의해서 채워졌기 때문에 마르게 될까 조심하고,

만물은 무에 의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죽게 될까 조심하고,

왕이 된 자는 무에 의해서 귀하고 높아졌기 때문에
거꾸러뜨려질까 조심한다.

 

그러므로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왕이 된 자는

스스로를 고아, 과부, 홀몸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천함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찬찬히 헤아려보면 찬양하게 된다.

무를 찬양하게 된다.

 

반지르르한 옥처럼 되지 말고(琭琭如玉),

둥글둥글한 돌처럼 되어라(珞珞如石).

-도덕경 39장

둥글둥글한 돌멩이


[개념정리]

-록록여옥(琭琭如玉), 락락여석(珞珞如石) : 반지르르한 옥처럼 되지 말고, 둥글둥글한 돌처럼 되어라. 록록(琭琭)은 옥의 모양새를 나타내고, 락락(珞珞)은 조약돌의 모양새를 나타낸다. 진짜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겸손할 수 있다. “참나(我:I AM=God=無=一)를 아는 자가 희귀하기 때문에, 참나가 귀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낡은 베옷을 입고 있으나 옥을 품고 있다.-도덕경70장”


[해설]

1. 보이는 유(有)와 보이지 않는 무(無), 그리고 하나

사람들은 보통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성공, 성과, 돈, 자리, 이미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요.

그런데 음양의 원리를 떠올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안에 음이 있듯이,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작용합니다.

도덕경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유와 무, 둘은 이름으로는 나뉘지만,
  • 실제로는 둘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유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각자 이름을 가지고, 역할을 가지고, 구분되어 살아갑니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에서는
이름도, 구분도, 경계도 없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도덕경이 말하는 “하나(一)”의 의미입니다.

  • 보이는 유의 세계에서는 “나”와 “너”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생명, 하나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도덕경 14장은 이 무의 세계를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고, 듣고 있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황홀한 하나”라고 표현했습니다.
무(無)의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유(有)의 세계입니다.

39장은 이 내용을 이렇게 풀어줍니다.

  •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푸르고,
  •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고,
  •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태어나고,
  • 왕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바로잡습니다.

다시 말해,
보이는 유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무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안다”는 것은

  • 나와 남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
  •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을 아는 눈입니다.
시간 속에서 왔다 가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서 늘 흐르고 있는 하나의 도를 보는 눈입니다.


2. 하나를 알면 왜 겸손해지는가 – 무를 경외하는 마음

이제 왜 39장에서
하늘·땅·계곡·만물이 모두 “조심조심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하늘은 무에 의해 푸르기 때문에,
    그 무를 잃을까 조심하고,
  • 땅은 무에 의해 편안하기 때문에,
    그 무너질까 조심하고,
  • 만물은 무에 의해 태어났기에,
    멸할까 조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 한계를 아는 존재의 겸손입니다.

“보이는 내 힘이 전부가 아니다.”
“나를 살게 하는 더 깊은 뿌리가 있다.”

 

하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합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의 영역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아는 사람은
자기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습니다.

  • 잘 되면 “내가 다 했다”고 교만해지지 않고,
  • 안 되면 “모든 게 끝났다”고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이는 나의 능력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무의 도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이 깨달음 때문에,
그는 늘 겸손해지고, 무를 경외하며, 조심조심하게 됩니다.

  •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이것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 어떤 자리에 올랐더라도,
    그 자리가 영원한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도덕경의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하나를 아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3. 옥처럼 번쩍이는 삶보다, 돌멩이처럼 하나에 뿌리박힌 삶

39장 마지막에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반지르르한 옥처럼 되지 말고,
둥글둥글한 돌처럼 되어라.”

 

겉으로 보면,
옥은 화려하고 눈에 띄고 귀합니다.
돌멩이는 투박하고 흔해 보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옥을 닮은 삶을 꿈꿉니다.

  • 화려한 스펙,
  • 눈에 보이는 성공,
  • 남들이 알아주는 자리.

그러나 “하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 그림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보이는 유의 세계만 바라보면,
남보다 더 빛나야 할 것 같고,
더 가져야 할 것 같고,
더 특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의 세계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각자 자기가 서 있을 자리가 있을 뿐입니다.

  • 누군가는 강물 위에 떠 있는 잎사귀처럼,
  • 누군가는 강바닥을 받쳐주는 돌멩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도를 드러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선택합니다.

  • “남들보다 화려해지는 것”보다
    하나와의 연결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 “보이는 자리”를 높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인 무(無)를 경외하는 마음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왕이 스스로를
고(孤), 과(寡), 불곡(不穀)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나는 스스로 선 존재가 아니라,
하나에 기대어 서 있는 존재다.”

 

이 고백이 있을 때,
리더는 옥처럼 번쩍이는 왕이 아니라,
돌처럼 백성을 받쳐주는 왕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 눈에 잘 띄는 옥 같은 인생이 아니라,
  •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 주는 돌멩이 같은 인생
    도덕경이 말하는 “도답게 사는 삶”입니다.

정리해 보면, 도덕경 39장의 “하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유와 무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우리는 유의 세계에서 각자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무의 세계에서는 이름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 하나를 알면 영원을 압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순환하며,
    보이는 것 뒤에서 언제나 보이지 않는 무가 작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3. 그래서 겸손해집니다.
    무를 경외하고, 조심조심하며,
    자기를 낮추고, 옥보다 돌멩이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도덕경 39장이 말하는 “하나를 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보이는 것에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를 깊이 경외하며,
하나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도덕경은 그런 사람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hXhsU7ZXmgM?si=jFBgp7TWhgowk_mU

도덕경 39장 노래로 즐겨 보아요~!